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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상

철학과 사상 묵자 겸애(兼愛). 비명(非命). 절용(節用)과 비악(非樂)

by 철학과 사상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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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상 묵자의 겸애(兼愛), 비명(非命), 절용(節用)과 비악(非樂)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중국 전국시대에 활동한 제자백가 중에 묵가학파를 창시한 사상가이며 과학자, 군사가 입니다. 그의 출신 신분이 일반 평민이었기에 서민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철학 속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년기 때는 유교를 배웠는데 유교가 너무 '예(禮)'에 치우친 것에 백성들의 생계와 생산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하며 겸애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게 됩니다.

철학과 사상 묵자 겸애 비명 절용과 비악
철학과 사상 묵자 겸애 비명 절용과 비악

겸애(兼愛)

그가 활동하던 중국의 전국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무자비하게 다스리는 계급사회였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발생했던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인간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그는 '겸애'를 주장하게 됩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함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통해, 겸애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무차별적인 사랑이며,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높은 신분인 자가 낮은 신분인 자를 무시하는 모든 행위들이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식했습니다. 또한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활동을 전개합니다. 전쟁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반인류적인 죄로 정하고, 일방적으로 쳐들어오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성을 방어하는 기구 및 발명품을 만드는 등 약소국의 수비를 위해 직접 동참하였습니다.

비명(非命)

묵자는 비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포악한 군주가 지어낸 것이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떠받드는 것이지, 어진 사람이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는 당시 유가 및 도가로부터 유행한 운명론을 반대하였습니다. 이것을 반대한 이유는 가난한 일반 평민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계급적 봉건사회에서 운명론은 지배층에 복종해야 하는 사상일 뿐입니다. 그는 운명을 부정하면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명(命)이 아니라 역(力)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이란 사람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노력입니다. 사람들의 노력이 바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운명을 부정하고 인간의 노력을 최우선시하였다는 점에서 묵자는 실천을 매우 중시한 사상가라 볼 수 있습니다.

절용(節用)과 비악(非樂)

묵자는 '교상리(交相利)'를 통해 백성들의 서로 간 경제적 이익 증대를 목표로 정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소박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최선을 다할 것을 기본적으로 주장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이용후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생산하지 말아야 하고, 재화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소비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당시 유교가 예를 중시하면서 장례식이나, 제사 때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는 풍속 등을 비판하면서 군주나 귀족들 모두가 소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교에서 강조하고 긍정하는 예악사상을 부정하면서 묵자는 비악사상을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음악의 즐거움이 노동의 생산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생산성만을 강조한 것은 아닙니다. 절용은 묵가가 매우 강조한 사상 중에 하나인데요, 절용이란 아끼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는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절도 있는 소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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